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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문화제 전의 두 사람

mingle 2022. 2. 27. 18:39

웹소설 사이트 카쿠요무에 기재된 단편 소설.


문화제 전날은 수업도 오전에 끝나고, 오후부턴 각자 학급 기획과 부스 준비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항상 일이 있었기에 방과후에 남아 도와줄 수 없었던 유지로와 아이조도 이날은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작업에 참여했다.
안뜰 구석에서 만들고 있는 건 '호러 하우스'의 무대장치였다.
둘 외에도 여러 명의 반 친구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교실에서는 여자애들이 의상 제작을 하고 있을 터다.
둘이 입을 흡혈귀 의상을 만들겠다고 잔뜩 의욕이 넘쳤었다.
그건 좋지만―.
줄자를 손에 들고 쫓아오던 여자애들의 무시무시한 형상이 떠올라, 유지로는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그녀들을 뿌리치고 이 안뜰까지 도망쳐왔다.
지금, 만들고 있는 건 '호러 하우스'의 벽이다.
옆을 보자 아이조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벽돌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붓질하고 있었다.
30분 정도 지났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반 남자애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골판지를 조립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건 '관'인 것 같았다.

(.................. 졸려............)

날씨가 좋고 11월 치고는 따뜻해서 하품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교실 책상에 엎드려서 잘 시간이지만, 반의 일원이니 도와줄 수밖에 없다.
빨간 페인트 통을 따 그 안에 한 손을 철퍽 쑤셔 넣었다.
아이조가 정성스럽게 칠하고 있는 벽돌 위에 손을 철썩 누르자 빨간 손자국이 찍히며 페인트가 주륵 흘렀다.
그게 마치 '피 묻은 손자국'처럼 보였다.
약간 웃겨서 다시 철썩 손자국을 찍었다.
반복하자 아이조가 끝내 참을 수 없어졌는지 어깨를 들썩였다.

"어이!"
"왜?"

뒤돌아보자 아이조가 날카롭게 노려봤다.

"왜 사람이 예쁘게 만든 데다가 철썩철썩 손자국을 찍는 거야!"
"귀신의 집이잖아?"
"그치만! 다른 데다 찍어."
"너야 말로 다른 데다 칠하지?"

아이조가 "뭐!?"하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는 처음부터 여기를 칠하기로 마음먹었어. 너가 딴 데 가!"
"싫어."

휙 외면하고는 아이조가 칠하려던 벽돌 위에 사정없이 철썩 손바닥을 눌렀다.
"아앗!" 하고 아이조가 짜증이 난 듯 소리를 질렀다.

붓을 쥔 손을 부르르 떨고 있는 상대를 보고 유지로는 히죽 웃었다.

"아~ 그래......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아이조는 벽돌색 페인트를 더해 붓으로 손자국을 칠하려고 했다.

"뭐야!? 뭐 하는 거야?"
"너가 먼저 했잖아~"

보복이라는 듯 다른 손자국도 덧칠하려던 아이조에게 유지로는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빨간 페인트 통을 끌어당겨 두 손을 담갔다가 철썩철썩 손자국을 찍었다.

"앗, 뭐 하는 거야! 그만둬, 바보야!"

당황한 듯 아이조가 체육복 소매를 잡아당겼다.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못 들은 척 할 수 없겠는데."
"너밖에 없잖아!"
"아이고, 미끄러졌다."

부자연스럽게 말하며 아이조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쿵 부딪쳤다.
엉거주춤하던 아이조가 비틀거리며, "우왓!" 소리를 지르며 땅에 한 손을 짚었다.

"너 말야...... 진짜 성격 좋구나......"
"너만큼은 아닌데?"

서로 노려본 채 능청스럽게 웃었다.
이 상대와의 일상은 뭐 이 정도다.
이래도 일할 때는 일단 호흡이 잘 맞는 콤비로 되어 있다.
스태프들이나 관계자들에게 '사이좋네'같은 말을 많이 들은 게 생각나서 유지로는 '어디가?'라고 속으로 투덜댔다.
유닛이 결성된 지 1년이 넘었는데 공교롭게도 영 마음이 맞지 않는다.
서로 만나면 싸움만 한다.
이런데도 서로 잘해나가는 편이다.

"정말이지~~~~~ 용서 못해~~~~~~~!!"

힘껏 붓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친 아이조가 양손으로 체육복을 잡아왔다.

"너야말로 방해돼!! 눈에 거슬려!!"

힘껏 손으로 얼굴을 밀어젖히자, 아이조가 "우왓!"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얼굴에 페인트 묻었잖아!!"

얼굴을 보자, 아이조의 턱에서 볼까지 빨간 손자국이 찍혀있었다.
유지로는 무심코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녹화에 그대로 나와~~. 주목받을 테니까!"
"너도 찍어줄게!! 얼굴 내놔!"

페인트 통에 손을 집어넣은 아이조가 그 손을 밀어붙이려 했다.
유지로는 "절대 안 돼!"라고 저항하며 발로 걷어찼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남자애들이 "뭐 하는 거야~"라며 웃고 있었다.

""까불지 마~~~~~~~~~~!!""

몸싸움을 하고 있는데, "와아아!"하고 당황한 여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또 싸우지~~~!!"

안색을 바꾸고 달려온 이는 페인트 두 통을 안은 같은 반 스즈미 히요리였다.
뒤돌아본 둘의 얼굴이 "어?"하고 굳어졌다.
안 좋은 예감이 들자, 아니나 다를까―.
목재에 걸려 넘어진 그녀가 "우갹~~!"하고 소리를 지르며 페인트 통을 집어던졌다.
위험하다고 생각한 둘은 반사적으로 발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 순간 통이 머리에 쿠당탕 떨어졌다.


지면에 넘어진 히요리가 "아야야야....!"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각각 빨강과 초록 페인트를 뒤집어쓴 둘은 망연한 얼굴로 마주 봤다.
머리에서 페인트가 뚝뚝 떨어졌다.
통이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와 발밑에 굴렀다.

"저, 저, 저기............ 그러니까............"

얼굴을 굳힌 히요리가 쭈뼛쭈뼛하며 입을 열었다.

"내............ 탓......일까?"
""스즈미 씨.""

둘이 부르자, 히요리는 파랗게 질려 삐걱대는 동작으로 빙그르르 뒤로 돌았다.
그녀는 둘의 사무실에서 수습 매니저로 비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학교 안에서는 그냥 반 친구로 되어있다.
평소에는 가능한 한 엮이지 않으려고 하는데―.

"ㅈ, 저...... 수건 가지고 오겠습니다............"

도망치려는 히요리의 어깨를 잡자, 유지로와 아이조가 싱긋 웃음을 미소 지었다.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학교를 마치고 사무실에 온 둘을 보자마자 매니저가 "히익!"하고 비명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커피 텀블러를 떨어뜨렸다.
사무실에서 나온 여성 스태프도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너, 너, 너, 너희들.......... 왜, 왜 갑자기...... 그런............ 토마토랑 피망 같은 머리가 된 거야....!!"

그렇게 절규하자 유지로와 아이조는 인상을 쓴 채 서로를 봤다.
얼굴과 손에 묻은 페인트는 겨우 지울 수 있었지만, 머리는 완전히 물들었다.

"평소 너희 이미지 컬러랑 다르잖아! 오늘은 방송 녹화가 있는데, 어떡해, 그 피자 토스트 같은 머리!!!"

두 손을 허리에 짚은 매니저가 귀신의 형상이 됐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둘 다 시무룩해져서 우물거리며 사과했다.
그리고는 문이 조금 열려있는 휴게실 쪽을 찌릿 노려봤다.
들여다보던 히요리가 "히익!" 소리를 내며 구르듯 복도로 뛰어나왔다.

"제, 제가............ 파란색과 노란색 페인트 사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허겁지겁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어갔다.

""그건 아니잖아!!""

둘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합창했다.

귀찮은 상대가 한 명에서 두 명이 된 지 벌써 몇 개월.
시끄러운 일상에도 슬슬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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