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 2
시무룩한 얼굴은 어울리지 않아요. 자 자, 귀를 기울여주세요.
[1]
다음 날 수업이 끝나고 학교를 나선 아이조는 교복 차림을 하곤 단골 악기점으로 향했다.
역 뒤편 좁은 거리에 있는 구멍가게다.
그 옆은 노래방이 있어 대낮부터 요란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모리타 악기점이 이 가게의 이름이다.
유리문을 들여다보니, 점주인 모리타 씨는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말을 거는 건 나중에 할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게 옆에 있는 바깥 계단을 올랐다.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를 꽂고 돌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복도를 지나면 안쪽에 3평 정도의 방이 있었다.
닫힌 커튼 틈새로 가느다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기타 케이스와 가방을 내리고 커튼과 창문을 열었다.
환기를 시키는 동안 간단하게 청소를 시작했다.
과거 음악학원 레슨실로 쓰였던 방답게 구석에 피아노가 쭉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일단 먼지를 털고 있지만 아이조는 피아노를 치지 않아서 완전히 장식품이 되어있었다.
대충 청소를 마치고 페트병에 든 물을 마시며 방을 둘러보았다.
모리타 씨를 만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평소와는 달리 뒷길을 지나자 이 가게가 있었다.
무심코 들른 건 아버지가 치던 기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진열장에 진열된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바라보고 있자 가게에서 앞치마를 두른 몸집이 큰 사람이 나왔다.
그게 모리타 씨였다.
“기타 시작해보고 싶나?”
“아!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구경만 한 건데……”
흥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단지 집에선 더 이상 기타를 못 쳤으니까.
횡설수설 대답하자 모리타 씨는 안쪽 쇼케이스에서 차례차례 기타를 꺼내 연주해주었다.
어느 것도 중학생의 용돈으로 간단히 살 순 없었지만, 가게에 들를 때마다 모리타 씨는 사양하지 않고 연주해주었다.
그게 기뻐서, 하굣길에 매일 같이 드나들게 되었다.
모리타 씨가 없었다면 옷장에 처박혀있던 줄이 끊긴 기타를 꺼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주하고 싶은 마음을 견딜 수 없어서 비가 오고 가게도 닫을 시간인데 기타 케이스를 안고 집을 뛰쳐나왔다.
“이거…… 고쳐주셨으면 하는데……”
흠뻑 젖은 채 찾아온 아이조를 보고 셔터를 닫으려던 모리타 씨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정은 알리지 않았다.
기타가 누구의 것인지도.
폐점 후 가게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줄을 교체하는 모리타 씨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져 눈물이 참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빌린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작업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물병을 창가에 두고 일어나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냈다.
준비하고 가볍게 소리를 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날부터 계속 연주했지……”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무렵엔 집에 있는 것조차 괴로워서 이 가게에 틀어박혀 있는 일이 많아졌다.
대신 가게를 지키거나 악기 손질을 도와주기도 했다.
모리타 씨에게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지만, 조금은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집에는 기타를 가지고 돌아갈 수 없었다.
집에서 연주하면 아마 엄마는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는 레슨실로 쓰이지 않고 창고가 되어버린 방을 모리타 씨는 “연습실”이라며 빌려주었다.
물론 집에 잘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부였다.
그 후로는 거의 매일 같이 방에서 지내왔다.
숙식을 하기도 하지만, 시키는 대로 두 번 정도는 집에 돌아갔다.
이 방과 이 기타가 없었다면 아마 조금 더 비굴했을 것이다.
오디션 모집공고를 보았을 때, 어릴 적 출전했던 노래 콩쿠르가 떠올랐다.
환하게 비친 무대에 선 자신과, 웃는 얼굴로 박수 쳐 주는 객석의 사람들, 거기에 있는 부모님과 형.
그리고 쭉 잊고 있었던 가슴 뭉클한 고양감(高揚感)과 기쁨을.
그 순간 느낀 건 확실히 『행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다시 한번 무대에 서고 싶다.
다시 한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싶다.
그런 충동을 느끼면서도 ‘아이돌은 나한텐 무리야……’라며 핸드폰을 움켜쥔 채 고개를 숙였다.
여자에 약해서 학교에서도 무뚝뚝하다고 평판이 나쁜 편이었다.
어떻게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 될 수 있겠는가.
노래와 춤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
그러면서도 오디션을 본 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기회가 필요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 계속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이 오디션만이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으로 보였다.
무대 위라면 날 필요로 해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나의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기뻐해 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결의가 굳어지자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그날 중으로 응모를 했다.
오디션에 합격하자 갑자기 나를 둘러싼 세상이 바뀌는 것 같았다.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그보다 기대가 더 크다.
아이조는 기타의 튜너를 조절해 음을 맞췄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연주를 시작하니 오늘은 의외로 컨디션도 좋고, 평상시엔 잘 안 맞던 코드 전환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고, 스트로크도 원활했다.
아이조는 발끝으로 리듬을 잡으면서 마음껏 연주하기 시작했다.
기타를 치우고 방을 나서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바깥 계단을 내려갔다.
방금까지 정신없이 연주하던 곡을 흥얼거렸다.
가게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있던 모리타 씨가 피식 웃었다.
“뭐야, 왔었냐.”
“말을 걸려고 했는데 손님이 와있길래.”
“마침 잘됐다. 지금부터 잠깐 상가 모임이라서. 한 시간 뒤에 돌아오는데, 가게 좀 봐줄래?”
“그런 말 해도 그냥 술자리잖아?”
회합이라며 모리타 씨가 가는 곳은 세 건물 앞에 있는 술집이다.
상가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항상 축구 경기와 야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이웃을 사귀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모리타 씨는 자신이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아이조에게 건네줬다.
공짜로 얻어 사는 신세로선 거절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레슨도 없고, 다른 일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가하다면 한가했다.
평일이니까 바쁠 일도 없겠지.
“괜찮긴 하지만 말이야…… 한 시간뿐이라면!”
(분명 두 시간은 지나야 돌아오겠지만……)
앞치마를 두르며 카운터로 들어갔다.
“고기만두랑 호빵이 있으니까 전부 먹어도 돼. 심부름 값 대신이다.”
“심부름 값…… 초등학생이냐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자 “그닥 변하진 않은 거 같은데”라고 모리타 씨는 웃으며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덕분에 머리가 산발이 되었다.
“엄청 변했거든.”
모리타 씨는 “그럼 잘 부탁해~”라고 손을 흔들면서 가게를 나갔다.
“대충인 아저씨네.”
카운터에 놓여 있는 봉투를 들여다보자 고기만두와 호빵이 각각 세 개씩 들어 있었다.
사 온 지 얼마 안 됐는지 아직 따뜻했다.
“전부라니…… 나 혼자 이렇게는 못 먹는다고.”
안에서 고기만두를 하나 집곤 덥석 베어 물었다.
가게를 지키는 동안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수학 시간에 숙제를 내줬던 기억이 떠올라 가방에서 프린트와 교과서를 꺼냈다.
10분 정도 했을까.
문제를 풀고 있는데 툭 튀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기분 좋은 그 울림에 이끌려 문득 고개를 들었다.
가게에 줄지어 있는 피아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들어왔나 보다.
딩동댕동 시험 삼아 연주하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이 노래 뭐였지…… 클래식이었나……)
음악 수업 시간에 들었던 것 같은데 곡명이 기억나지 않았다.
누가 치고 있는지 궁금해서 먹다 만 고기만두를 집어 들고 움직였다.
마침 피아노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상대방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문득 얼굴을 내미는 순간, “어!”하고 소리가 나왔다.
그 목소리에 놀란 듯 연주가 뚝 그쳤다.
눈이 마주치자 상대방은 있는 힘껏 얼굴을 찡그리곤 발의 방향을 바꿨다.
아이조는 유지로의 어깨를 잡아 멈춰 세웠다.
“잠깐…… 어이, 기다려!”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본 유지로의 미간엔 주름이 잡혀 있었다.
팔에는 근처 CD 가게의 종이봉투가 걸려있었다.
그곳에 들렸다가 돌아오는 길일 것이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의아한 눈초리로 물어왔다.
“뭐라니…… 가게 보고 있는데?”
“이제 아이돌이 되는 건 포기하고 직업을 바꿀 셈이냐. 별로 말리진 않지만.”
유지로의 시선이 아이조가 입고 있는 앞치마로 향했다.
“미안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직업을 바꿀 생각도 없어!”
유지로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이끌려 그만 기분이 언짢아졌다.
(조금 전의 연주는 정말 이 녀석이 친 건가?)
둘러보았지만 가게 안엔 둘밖에 없었다.
“아이고, 속상해라.”
여전히 귀엽지 않은 말투다.
그렇다곤 해도 제법 익숙해졌다.
유지로가 아이조의 곁으로 시선을 옮겼다.
“왜 고기만두 먹고 있어? 여기 악기점이라고 생각했는데 고기만두도 팔아?”
“그럴 리가 있나. 받았지 뭐.”
“흐음……”
“먹고 싶다면 있는데……? 호빵이랑 고기만두.”
모리타 씨가 모처럼 사 오셨는데 혼자선 다 먹을 수 없었다.
어차피 ‘필요 없어’라고 거절당하리라 생각했지만 일단 물어봤다.
“……먹을래.”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어?”하고 약간 놀라며 유지로를 보았다.
카운터 의자에 앉은 아이조는 페트병의 물을 마셨다.
옆을 보니 유지로는 카운터에 양 팔꿈치를 짚으며 호빵을 베어 물고 있었다.
오늘은 레슨이 쉬는 날이라 오랜만에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숨을 내쉬고 샤프를 집어 들었다.
숙제는 아직 하다 말았다.
이왕이면 끝내버리고 싶다.
“…………왜 가게를 지키는 거야?”
심을 딸깍딸깍 빼고 있는데 가게 안을 응시하던 유지로가 그렇게 물었다.
“부탁받았어. 신세 지고 있는 아저씨한테.”
“…………신세?”
“아니…… 그냥 방 빌리고 있어.”
“방이라니?”
“창고라고 할까, 연습실이라고 할까.”
“흠……”
유지로는 남은 호빵을 입에 넣곤 입가에 묻은 팥을 엄지로 닦았다.
평소에 비하면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유지로가 오늘은 자주 질문했다.
그 모습이 신기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물어보고 싶었다.
“너 말야, 피아노…… 치는구나.”
“…………”
유지로는 약간 벌린 입을 꾹 다물었다.
“……배우고 있는 거야?”
“전에는…… 지금 집에는 피아노도 없고.”
(아쉽네……)
“그러고 보니…… 방에 피아노가 있었네.”
방구석에 놓여 있던 피아노가 문득 생각났다.
“방치된 녀석이라 제대로 소리가 날진 모르겠지만.”
아이조는 “……연주해볼래?”라고 물었다.
유지로가 ‘어?’라는 듯 눈을 깜빡이며 이쪽을 보았다.
“오늘은 가게를 보지 않으면 안 되지만…… 레슨 없는 날이면, 난 자주 여기에 있고.”
쓸데없는 참견인 건 알고 있었다.
단지, 연주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유지로라고 해서 개인적인 시간까지 관여하고 싶진 않을 거다.
매일같이 사무실에서 만나 함께 레슨도 받고 있지만,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피아노에 대해 물어오지 않았다.
잊어버렸거나 아니면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악기점에서 나눈 이야기는 이미 끝난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조.”
방에서 기타연습을 하고 있던 아이조는, 자신이 불리고 있음을 눈치채고 헤드폰을 목까지 비틀어 뺐다.
문이 쿵쿵 두들겨지고 있었다.
기타와 헤드폰을 두고 현관으로 이동해 문을 열자, 모리타 씨가 서 있었다.
“친구가 와있는데?”
“친구?”
“이 방으로 누굴 부르다니 별일이군.”
모리타 씨가 문 앞에서 물러났다.
아이조는 거기에 서 있는 상대를 보고 “엇”하고 소리를 냈다.
“실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지로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모리타 씨가 계단을 내려가자 곧장 평소의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멋대로……착각하셨을 뿐이니까.”
변명하듯이 말한 유지로는, 본의가 아닌 듯한 얼굴을 했다.
이 방에 대해 들은 사람은 유지로밖에 없으니까, 다른 누군가가 올 리 없었다.
(뭐…… 말을 한 건 나긴 하지만……)
아이조는 목 뒤에 손을 얹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와.”
한 걸음 물러서자 유지로는 잠자코 안으로 들어왔다.
복도를 지나 방으로 데려가자 유지로는 곧바로 피아노에 다가갔다.
(올 거면 온다고 미리 말하라고……)
뚜껑 위에 악보를 펼쳐놓고 있었다.
그걸 서둘러 치웠다.
생각해 보면 연락처조차 교환하지 않았다.
(물어봐도 솔직하게 가르쳐줄 리 없지.)
유지로는 광택이 나는 검은 피아노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 손이 천천히 건반 뚜껑을 열었다.
“조율이라던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아이조는 그렇게 말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손가락을 모은 유지로가 선 채로 건반을 탁탁 쳤다.
예쁜 소리가 났다.
소리를 확인하듯 계속 딩동댕동 소리를 내곤 “잘 조율돼있네.”라고 중얼거렸다.
“그런가……?”
(아저씨가 가끔 했나 보네.)
유지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 있었다.
억지웃음이 아닌 저절로 지어진 듯한 미소였다.
아이조도 기타를 치고 있을 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유지로의 경우는, 그게 피아노일 것이다.
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꽤나, 참고 있었나……)
아이조는 피아노 옆을 떠나 소파로 이동했다.
창문은 닫혀 있으니 밖으로 소리가 새는 일은 없을 거다.
아무렇게나 연주하는 듯한 선율을 들으면서 별 할 일도 없기에 탁자에 던져져 있던 음악 잡지를 넘겼다.
소리가 부드럽고 우아하다.
가게에서 유지로의 연주 소리를 들었을 때도 생각했다.
그 소리에 홀린 듯 피아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언제나 무뚝뚝한데……)
어떻게 치고 있는지, 뒷모습만 보여서 알 수 없었다.
너무도 달라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랑 똑같을……지도 몰라.)
음악이 좋다.
춤이 좋다.
팽팽히 맞서는 것도, 좋아하는 일에 지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단순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이조는 잡지로 시선을 돌려 책장을 넘겼다.
저런 상태론 직성이 풀릴 때까지 계속 연주할 것 같았다.
오늘 정돈 유지로에게 이 방을 양보해줘도 상관없을 것이다.
[2]
……오랜만에 느끼는 건반의 감촉이었다.
CD 가게에 들르고 역으로 향하는데 악기점에 있는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그냥 보고 지나쳤을 테지만 갑자기 그 소리가 듣고 싶어서 가게 문을 열었다.
(저놈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손가락을 미끄러지듯 튕기면서, 놀란 아이조의 얼굴을 떠올렸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며 놀란 건 유지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여기가 아이조의 은신처인 것 같다.
방은 그럭저럭 정리되어 있고 청소도 되어있었다.
담요까지 가지고 온다는 건 잠을 자는 일도 많다는 것이다.
방음이 되는 것 같았으니까, 기타연습도 할 수 있다.
피아노는 낡아서 열쇠 뚜껑에 군데군데 흠집이 나 있었지만, 관리는 한 것 같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에 올라가기 전의 일이었다.
소메야 가문에 들어가기 전, 살고 있던 집 거실엔 피아노가 있었고, 언제나 그 앞에 앉아 연주했다.
음악의 즐거움을 처음 일깨워 준 건 그 피아노였다.
지금의 집으로 옮기고 나서 몇 년간은 학원을 다녔지만, 연습할 시간도 없어져서 그만둬 버렸다.
게다가 지금 집에는 피아노도 없었다.
그만둔 뒤론 줄곧 건반을 언급하지 않았다.
‘……쳐볼래?’
아이조에게 그렇게 들었을 때, 망설여서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 건, 제대로 연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연주를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움직였다.
연주 방법은 잊지 않은 것 같다.
어렸을 땐 그렇게 정신없이 쳤는데, 지금 집에선 피아노 같은 걸 계속할 수도 없어서 그만두고 말았다.
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게 많았으니까.
예능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연주하고 싶단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악기점 앞을 지나갈 때, 가게 안에 놓여 있던 피아노를 보고 갑자기 그 소리가 생각났다.
늘 듣던 통통 튀는 듯한 가벼운 그 음색을.
몹시도 치고 싶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반을 만지는 순간 울컥한 건 어릴 적 쭉 느꼈었던 『좋아한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예능 때문에, 가문을 위해서라고 손을 뗐었는데.
사람은 그리 쉽게 자신이 좋아했던 것을 잊을 수 없나 보다.
연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건 참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젠 집안일에 얽매일 필요도 없어졌으니까.
한번 치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안절부절못하곤, 레슨이 없는 날까지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으면서 이렇게 악기점까지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뭐 하고 있지……?)
조용하곤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궁금해서 손가락을 멈췄다.
뒤돌아 소파를 보니, 아이조는 누워있었다.
(자고 있고……)
바닥엔 음악 잡지가 떨어져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여기에 온 지 두 시간이 넘어있었다.
몰두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체감상 30분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남아있었다.
집안일을 도와주라는 것일 테지.
우울함을 머금은 한숨이 작게 흘렀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건반 뚜껑을 지그시 닫고 일어났다.
빚을 졌으니 조용히 돌아갈 수도 없었다.
소파 옆으로 가서 “야.”라고 불렀다.
단잠에 빠져 있는지 바로 깨지 않았다.
허리에 손을 얹고 어쩌지 하고 생각했다.
(정말이지……어째서 내가……)
발로 차면 일어나겠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겼다.
손을 뻗으면서 이름을 부를까 했지만 단념했다.
“일어나라니까……”
약간 앞으로 굽힌 자세로 어깨를 추스르자 아이조가 벌떡 일어났다.
피할 틈도 없이 퍽하고 충돌했다.
““아파-앗!!””
둘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부딪힌 이마를 문질렀다.
악기점 방을 나온 유지로와 아이조는 거리를 두고 걸으면서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마에는 아직 찌릿찌릿한 통증이 남아있었다.
외면한 채 유지로는 볼을 부풀렸다.
“다신 절대 저기 안 가……”
홧김에 말하자, 아이조는 화가 난 듯 노려봤다.
“오기만 해봐. 한 발짝이라도!”
“왜 화내는 거야? 사람한테 박치기해놓곤.”
“그쪽이 먼저 박치기로 깨우려 했잖아!!”
대답을 듣곤 “하!?”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갑자기 일어났으면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정말이지 최악!”
(더는 깨워주지 않을 거야……!)
이마에 손을 얹고 유지로는 지긋지긋하단 얼굴을 했다.
““돌대가리!””
동시에 말하자, 두 사람 모두 기분 나빠졌다.
“전생에 매머드를 때렸던 돌도끼냐?”
“뭔 소리야, 너야말로 똥고집이니까 머리가 딱딱한 거야.”
““따라오지 마!!””
흥 하고 고개를 돌리며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는 곳은 같은 역이지만 더는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한참 걷고 나서 돌아보니 아이조도 같은 타이밍에 뒤돌아 있었다.
싫은 얼굴을 하고 아이조를 향해 유지로는 마음껏 베~ 하고 혀를 내밀었다.
[3]
학교가 끝나자 아이조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악기점으로 향했다.
레슨이 없는 날이니까 천천히 기타를 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유지로 군이라면 방에 올라가 있을 거야.”
가게에 들르니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던 모리타 씨가 그렇게 알려줬다.
아이조는 “하아!?”하며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뺏겼다……”
절대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주제에 유지로는 레슨이 쉬는 날엔 꼭 왔다.
덕분에 아이조는 들어가지 못했다.
저 방을 모리타 씨한테 빌리고 있는 건 아이조였다.
조심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함께 같은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기분 나빴다.
“아, 그래. 새 열쇠를 만들었으니 줬어.”
“아악~, 어째서!”
아이조는 쿵 하고 카운터에 양손을 짚었다.
“불편해?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편이 좋잖아.”
“그러니까 아무 때나 올 수 있으면 내가 곤란해!”
“같이 연습하고 있는 거 아니야?”
“걔랑 연습할 게 뭐가 있어!”
“둘이서 아이돌 되는 거 아니야?”
큭, 말을 잇지 못한 아이조는 “틀리진 않지만……”이라며 우물쭈물 말을 흐렸다.
“왜 이리 심통 난 거야? 별놈 다 보겠네.”
모리타 씨는 “그냥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한 뒤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만의 방이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모리타 씨가 친절해서 빌려주고 있을 뿐이다.
모리타 씨가 괜찮다고 말한 거면, 유지로가 오는 것에 불평할 수 없었다.
(그 방에 대해 알려주는 게 아니었어……)
어차피 또, 가문의 사람이 데리러 올 때까지 계속 연주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조의 부모님은 오늘도 돌아오지 않는다.
내일은 학교도 쉬니까, 여기서 자도 혼나진 않을 거야.
기타연습은 유지로가 돌아가서도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지……”
한숨을 쉬며 조금 전까지 모리타 씨가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이어폰과 핸드폰을 가방에서 꺼내 노래를 틀며 카운터에 놓인 기타 카탈로그를 펄럭펄럭 넘겼다.
비밀번호는 lesson 7의 두번째 줄 마지막 4글자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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