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LOVE&KISS

[소설] LOVE&KISS (1-1)

mingle 2023. 5. 14. 10:49

Act Ⅰ ~제1장~
지금부터 말하는 이야기
기적은 존재해 이걸 봐
 
노래를 못 부를 때가 있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때도 있다.
그 당시에는 잡음에서 도망치듯 세상을 닫고 있었다.
 
스튜디오의 좁은 부스 안에서 아이조는 헤드폰을 한 손으로 누른 채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신곡 녹음을 하는 날이었다.
이번이 첫 시도인데, 컨디션이 좋았다.
곡의 데모 버전과 악보를 받고 나서 수차례 연습했고 여러 패턴으로 바꿔 시도해보기도 했는데, 오늘이 제일 이미지대로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라, 이거 괜찮은데......)
 
스튜디오에 들어갔을 때 디렉터님이 "처음엔 가볍게 불러볼까."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컨디션이 좋았던 덕분일까.
표현이 풍부하고 소리도 안정적이다.
그 상태로 노래를 부르고, "좋았어."라며 주먹을 쥐었다.
 
"OK. 이걸로 갈까."
 
헤드폰을 비틀어 벗자,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조는 "어?"하고 유리창으로 막힌 컨트롤 룸을 바라봤다.
김 빠진 듯 "괜찮나요?"라고 물었다.
평소 같으면 이어서 재녹음을 해야 했다.
 
"딱 좋아. 너도 괜찮으면. 무슨 일이야? 오늘 컨디션 완전 좋은데."
 
"왜지?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아이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오늘 일기예보는 강수확률 0%.
아침에 집을 나왔을 때부터 쾌청했다.
스피커에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라는 디렉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럼 내친김에 한 번 더 불러볼까. 아까 느낌대로 하면 되니까."
 
아이조는 웃는 얼굴로, "네!"라고 대답했다.
생각대로 부를 수 없고, 몇 번이고 재녹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OK가 나오는 오늘 같은 날은 드물다.
게다가 꽤 좋게 불러서 더욱 기뻤다.
 
산뜻하게 녹음을 끝내고 인사를 한 후 스튜디오를 나서니 해가 지고 있었다.
교차로 횡단보도를 건넌 사람들이 잇따라 역 쪽으로 걸어갔다.
 
(오늘 일은 이걸로 끝이었지...... 레슨도 없고.)
 
스마트폰을 꺼내 스케줄을 확인하니, 조금 전 녹음으로 일정은 끝이었다.
아이조가 아이돌 오디션에 합격해 '뫼비우스'라는 기획사에 들어간 건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합격자는 데뷔 확정이라는 안내에 따라 응모했는데, 어째서인지 자신 외에 다른 한 사람도 합격하여 두 명의 유닛이 결성되어 버렸다.
유닛명은 'LIP×LIP'이다.
'로메오'라는 곡으로 데뷔해 지금은 고등학생 아이돌로 주목받기도 한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깜빡이며 빨간색으로 바뀌었기에 아이조는 교차로에서 걸음을 멈췄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안경을 끼고 있는데, 같이 신호를 기다리던 고등학생 여자 두 명이 "어, 어라, 아이조 군 아니야?"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박! 진짜잖아."라고 흥분한 기색으로 말하면서 이쪽을 보고 다가오는 게 민망해 모자챙을 내렸다.
신호등 너머 대형 비전에는 마침 자신과 파트너가 왕자님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나오고 있었다.
여름에 할 라이브 광고다.
거기에 맞춰 신곡 수록이나 CD 제작, 댄스 레슨에 보컬 트레이닝으로 매일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데뷔 전에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그저 시간을 오로지 공부와 기타 연습으로 보냈다.
그 외에 다른 걸 할 엄두도 못 내고, 누군가와 엮이는 일조차 내키지 않아서 대화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학교 친구들과는 나름 대화는 하고 있었지만,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거나 다 같이 놀러 다니지는 않았다.
집에 있기 힘들어 단골 악기점의 연습실을 빌려 그곳에 틀어박혀 있던 매일.
그런 자신이 아이돌 오디션에 지원한 건 노래가 부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아이돌에 적합한 성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생기는 건 질색이다.
모두의 왕자님처럼 행동하다니, 데뷔 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중학교 친구들은 아이조가 아이돌이 되었다고 들었을 때, "뭣, 진짜!? 네가?"라며 몹시 놀랬다.
당연하다. 그 당시엔 여자애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으니까.
무뚝뚝했던 적도 있고, 피했던 적도 있던 것 같다.
대형 비전으로 자신의 키스 날리기를 보는 건 꽤나 부끄러운 일이다.
아이돌을 할 성격은 아니지만, 그 밖에 내 노래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노래를 좋아해서 항상 소파 위를 뛰어다니며 노래하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조를 보고, 어머니가 즉흥적으로 응모한 게 노래 콩쿠르였다.
무대에 서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한 건 그때가 처음이기도 했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주위에서 칭찬을 받고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으니, 아이조 스스로도 "장래희망은 뮤지션이 되는 거야!"라고 떠들어댔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신바람이 났을 터다.
그랬던 주제에 막상 콩쿠르에 나가자마자 토할 것처럼 기분이 안 좋아져 복도에 주저앉았다.
커다랗게 부풀어 있던 풍선이 갑자기 쪼그라든 것처럼 겁에 질려 스스로가 몹시 작게 느껴졌던 것이다.
어떻게든 무대에 오른 건 형이 등을 밀어줘서다.
노래를 끝냈을 때 터져 나오던 박수 소리와 객석에서 들어준 가족의 자랑스러운 미소는 두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감격에 겨워 울고 계셨지만, 그래도 역시 웃는 얼굴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싶었다.
칭찬해 주길 바랬다.
무대에 서면 누구든 나를 봐준다.
누구든 나를 필요로 해준다.
싸우기만 하는 부모님도 이때만큼은 미소를 지어주셨다.
그게 그냥 기뻤다.
계속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싶다는 꿈을 처음 품었던 것도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변덕스럽게 생각만 하는 공상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리던 꿈이었다.
 
한번은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어 포기하고 있던 그 꿈을,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이 앞이 보이지 않던 나날에, 다시 한 번 꾸고 싶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까.
그것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면 누군가가 또다시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미소 짓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 어디에도 내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안심할 수 있는 장소를,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그게 아이돌 세계라고는 예상도 못했지만......)
 
아이조는 대형 비전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게다가 파트너는 이해할 수 없고 마음도 맞지 않아 충돌하기만 한다.
마치 미지의 외계인과 만나 매일매일 싸우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교신이 가능한 수준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화나는 것도 여전하고, 말싸움이라면 다반사다.
때로는 의견 차이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그래도 세상에서 단 한 명의 파트너임은 분명하기에 참을성 있게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오늘 잡지 촬영이었나?)
 
요즘 따로 일하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에 상대의 스케줄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다.
사무실에서 마주쳤을 때, 매니저와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패션지 촬영이었을 것이다.
매니저에게 일부러 확인할만한 것도 아니니 스마트폰을 끄려고 할 때, 메시지가 왔다.
 
(앗, YUI 씨한테서 온 거다......)
 
'FullThrottle4', 통칭 'FT4'라는 댄스 보컬 유닛의 멤버 중 한 명이다.
보컬 YUI와 RIO, 퍼포머 MEGU와 DAI.
그리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매니저 겸 프로듀서 IV다.
이들은 아이조가 치른 오디션의 심사위원이었고, 합격 이후에도 아이조와 파트너의 댄스와 보컬을 지도해 줬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면 즉흥으로 봐준다.
소속사도 다르고, 그들은 아이돌도 아니다.
아이조에겐 존경도 하지만, 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기도 했다.
'아이조~ 한가해? 엄청 맛있는 라멘집 찾았으니까 30분 뒤에 역 앞에서 만나~!'라고 상당히 억지스러운 권유의 메시지가 왔다.
아이조는 약간 쓴웃음을 지으며 '어느 역 앞에서?'라고 답장했다.
YUI가 말하는 「엄청 맛있는 라멘집」은 아마 「엄청 매운 라멘집」일 것이다.
그 사람은 누구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예전에 데려갔던 엄청 매운 탄멘집에서 너무 매운 나머지 3초 정도 의식이 날아갔던 게 생각났다.
그때 분명 꽃밭의 환각이 보였다.
가능하다면 이번엔 그냥 맛있는 라멘이 먹고 싶다.
그렇다고 얻어먹는 주제에 불평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가볼까......"
 
포기한 채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소 각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하고 싶은 말도 있다.
일이 끝나면 매니저가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을 터다.
녹음이 문제없이 잘 끝났다는 것만 보고하고 마침 초록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급히 건넜다.
 
YUI가 기다리고 있는 곳은 바로 근처에 있는 역인 것 같았다.
역 앞 광장으로 향하자 빌딩 불빛이 어두워진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역 출입구 부근에는 누군가와 약속이 있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바라보거나, 무리 지어 떠들고 있었다.
찾을 필요도 없이 YUI의 모습은 금세 눈에 들어왔다.
분수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그의 주위에 여자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생일까, 사회인일까.
이들과 즐거운 듯 웃고 있던 YUI가 "아이조~ 여기야!"라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엇, 아이조 군!?"이라고 순간 술렁이며 이쪽을 봤다.
아이조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모자로 얼굴을 가리려 했지만 늦었다.
근처에 걷고 있던 여고생들이 휙 돌아보며 "꺄악!"하고 흥분한 듯 소리를 질렀다.
 
"앗, 정말이다~ 귀여워~~!"
 
"에에~, 왜, 왜? YUI 군, 아이조 군이랑 만나기로 했어?"
 
YUI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래서는 일부러 변장한 의미가 없다.
일할 때 말고는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YUI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지금도 변장조차 하지 않았다.
FT4 보컬로서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그는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을 리 없는데 말이다.
소란이 일어나는 것도, 주목받는 것도 당연하다는 듯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태연했다.
그 여유가 부럽기도 했다.
 
"나, 아이조랑 갈 데가 있어서. 미안~"
 
YUI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기 힘들어 멈춰 서있던 아이조 쪽으로 다가왔다.
 
"어디 가~?"
 
"음~, 좋은 곳?"
 
비밀스럽게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고는 그 손가락을 여자들에게 향한 채 윙크했다.
팬서비스일 것이다.
 
"다음에 라이브 할 거니까. 우리 만나러 와. 최고로 기분 좋게 해 줄 테니까♥"
 
주위에서 "꺄아~!!"하고 기쁜 비명이 터져 나왔다.
"YUI 군 멋있어~~!", "꼭 갈게~!"라며 들뜬 여자들에게 YUI는 손을 흔들며 아이조와 어깨동무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FT4는 댄스 보컬 유닛이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인 나보다 훨씬 아이돌처럼 느껴진다.
경험의 차이일까 하고 아이조는 슬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YUI가 데려간 가게는 상가건물이 즐비한 좁은 골목에 있는 작은 가게였다.
입간판에 「한계돌파 매운맛 체감!!」, 「우리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절할 수준으로 매운 탄탄면」이라고 적혀 있는 걸을 보고, "으......극!"하며 겁을 먹었지만, "여기 탄탄면 진짜 맛있어~~!"라고 말하는 YUI에게 팔이 잡혀 있어 도망칠 수 없었다.
끌려가듯 가게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석에 앉았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보통 가게 안이 붐벼도 이상하지 않지만, 여기 점원들은 한가해 보였다.
손님은 한 무리밖에 없었다.
천천히 차분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사람이 적은 가게를 고른 건 아닐 터다.
그냥 너무 매운 나머지 손님이 잘 안 오는 것 같다.
이거 좀 위험하지 않을까, 먹기 전부터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가능하면 그나마 안 매워 보이는 걸로......)
 
"여기 엄청 매운 탄탄면 맵기 3배 올려서 2인분!"
 
메뉴를 살피기도 전에 YUI가 손을 들어 주문해 버렸다.
"앗, 자, 잠깐!!"이라고 소리쳤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같다.
점원이 "엄청 매운 탄탄면 맵기 3배 올려서 2인분!"이라고 복창하며 주문이 들어가고 있었다.
 
(3배 올려서라니 그게 뭐야. 그런 메뉴 없잖아. 비밀 메뉴인 거야!?)
 
"괜찮다니까~. 이 집 탄탄면 그렇게 안 매워!"
 
YUI는 딱 봐도 불안한 얼굴을 한 아이조의 등을 토닥이며 웃었다.
 
"YUI 씨의 '안 매워'는 일반 사람의 '너무 매워'에요!"
 
"아이조...... 좋은 거 가르쳐줄까? 매운 걸 먹으면 노래 실력이 좋아진다고~. 날 보면 알잖아!"
 
YUI는 의기양양하게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아이조는 무심코 속으로 지적했다.
오히려 목이 따끔따끔 아플 것이다.
 
(대체, 얼마나 강한 목을 가진 거야, 이 사람......)
 
"그래...... 그리고 매운 걸 먹으면 엄청 인기가 많아져!"
 
"전혀 모르겠어~......!! 무슨 의미인지!!"
 
아이조는 테이블에 엎드려 고뇌하듯 작게 신음했다.
 
"아이조는 단련하는 법을 모르네.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선배의 따뜻한 배려야."
 
도대체 무얼 단련하고 있는 걸까.
아이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왕이면 노래 실력을 더 단련했음 좋겠는데!"
 
FT4의 보컬인 YUI에게 배우고 싶은 게 많다.
이 사람의 힘찬 노랫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그러니까~, 매운 걸 먹으면 잘하게 된다니까~. 오늘 탄탄면이 그 첫걸음이지!"
 
YUI는 적당한 말로 둘러대며 나무젓가락을 종이봉투에서 꺼냈다 집어넣으며 놀고 있었다.
사실, YUI에게 보컬 레슨을 받은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데뷔 전, 퍼포머인 MEGU와 DAI에게 댄스 지도를 받은 적은 있다.
 
(그 두 사람의 지도는 굉장히 알기 쉬웠지......)
 
이런저런 엉뚱한 소문이 들리는 둘이지만, 기초부터 제대로 알려줬다.
춤은 그 둘이, 노래는 IV가 단련시켜 준 덕분에 지금의 자신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V는 역시 FT4의 리더인 만큼 차분하고 한결같이 상냥했지만, 가르치는 방식은 꽤 하드했다.
근소한 음정의 어긋남도 놓치지 않는 모습은 대단했다.
파트너인 그 조차 몇 번이나 지적당했을 정도다.
 
'알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IV를 화나게 해선 안돼!'
 
'맞아 맞아, 그렇지 않으면 진짜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니까~.'
 
IV의 지도를 받는 날, DAI와 MEGU가 정색하며 말했던 게 생각난다.
다행히 IV를 화나게 하진 않았고 지옥을 맛보지도 않았지만, 멤버들이 은근 IV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언뜻 알 것 같았다.
미소 뒤에 유무를 가릴 수 없는 위압감과 거스를 수 없는 강렬한 아우라가 있었다.
역시, 문제가 많은 파격적인 그룹의 리더를 하고 있을 만한 사람이다.
또 다른 보컬 멤버인 RIO에게도 레슨을 받았었다.
이들에게 "너희는 우리 FT4가 키운 애들이니까!"라는 말을 들으면, 라이브에서도 부끄러운 퍼포먼스를 할 수 없다며 기합이 들어간다.
그건 파트너도 같을 터다.
이들에게 계속 "아직 미숙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지 않다.
여유있게 웃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단 생각도 든다.
 
"......맞다. 다음에 스케이트보드 좀 가르쳐주세요."
 
YUI는 보컬 담당이지만 스포츠도 잘하며, 스케이트보드가 취미다.
눈이 올 때는 스노우보드도 탄다고 했다.
 
"괜찮긴 한데, 타본 적 있어?"
 
"잠깐, 형이랑 같이."
 
형이 사달라고 조른 스케이트보드로 함께 연습했던 적이 있다.
둘이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아이조, 형이 있지~?"
 
"지금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집에서는 거의 말도 안 하지만."
 
아이조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옛날엔 이렇지 않았다.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아 친했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보다 형과 노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때는 나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형을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스케이트보드도 그랬다.
형이 보드를 받은 그날은 하루종일 탔기에, 배우지도 않았는데 간단한 턴이나 점프 정도를 할 수 있었다.
아이조는 흉내를 내다가도 잘 되지 않아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기만 했는데, 그런 아이조에게 웃으며 요령을 알려준 것도 형이었다.
운동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체육은 다른 반 친구들보다 더 잘했다.
그저 형이 나보다 더 잘했던 거다.
 
(그 사람은 언제나 그랬었지......)
 
철봉도 축구도 농구도 달리기도 잘해서 반에서 일등이었다.
운동회 계주에 투표로 뽑혀 결승선 테이프를 먼저 끊는 건 항상 형이었다.
체육 시험 점수도 훌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본인은 특별히 자랑하지 않고 관심 없어 보였다.
원하면 더 위를 노려볼 수 있을 텐데, 그 길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주위 어른들에겐 답답해 보였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형에게 설교하던 걸 들은 적 있다.
성적은 좋은데 열의가 부족하다는 엄마의 말을, 형은 몹시 시시하단 표정으로 흘려듣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까워하지만, 형은 스스로가 가진 것에 별로 가치를 찾지 못한 것 같다.
재주가 좋아서 어떤 일이든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대신 질리는 것도 빨랐다.
어느 정도 실력이 늘면 "이제 됐어"라는 듯 내던지곤 했다.
스케이트보드도 그랬다.
몇 달 후엔 하지 않아 사준 보드도 방치되었다.
아이조가 그만둔 것도 형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연습해도 재미없고,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하고 싶지도 않다 보니 열정이 식어버렸다.
중학교에 들어갈 땐 서로 대화가 끊겼고, 얼굴을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기에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형의 성적이 엄청 좋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으니 알아서 적당히 해낸 듯하다.
동아리에 들어간 것 같지도 않았다.
좋든 싫든, 그 사람은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는다.
즉,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고 시원스레.
그게 어떤 것이든—.
그리고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중얼거림이 툭 나와버렸다.
최근 형은 방에서 들떠 있거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히죽거리는 등, 정말 기괴하지만 시종일관 즐거워 보이긴 했다.
예전과 같은 억지웃음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건 아마 좋은 징조일 거다.
정말 소중한 사람이 생겼다면, 이번엔 그 손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턱을 괴고 듣고 있던 YUI가 갑자기 머리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아이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왓!"하고 놀라며 옆을 보니, 그는 카운터에 양 팔꿈치를 짚은 채 웃고 있었다.
 
"다음에 같이 보드 사러 갈까? 타려면 필요하잖아?"
 
아이조는 곧장 "가겠습니다!"라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거 사면, 내가 철저히 때려눕혀주지! 각오해~"
 
"아니, 저...... 초보니까. 너무 엄격하지 않았으면......"
 
"금방 잘할 거라고. 그야 아이조니까. 넌 할 수 있는데 안 하려고 하는 점이 있어. 재주가 많으면 오히려 안 좋다 이건가? 뭐랄까,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YUI는 카운터에 올라온 라면 그릇을 자신과 아이조 앞에 놓았다.
그건 아이조가 형에 대해 했던 생각과 같았다.
남들에겐 자신도 그렇게 보이는 건지 조금 놀라 YUI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나 스스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역시 극복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겠지?"
 
YUI는 아이조에게 나무젓가락을 건네며 피식 웃었다.
아이조는 눈앞의 사발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윽...... 역시 매워 보여......!)
 
국물 표면이 온통 붉은색이라 보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았다.
입에 넣어도 괜찮은 수준일까 전전긍긍하며 아이조는 나무젓가락을 뜯었다.
 
"YUI 씨...... 있잖아요."
 
"응~?"
 
"......후식으로 행인두부* 시켜도 될까요?"

*달달한 중국식 젤리 일종

 
파트너와 달리 평소엔 단 음식을 별로 먹지 않지만, 오늘은 반드시 필요했다.
YUI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이조를 보곤 "아하하하하핫!"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좋아. 단, 그 라멘 다 먹으면."
 
 
 
"하아, 맛있었~~다! 엄청 매운 라멘, 최고야~!"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며 YUI가 만족스럽게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윽......크윽!"
 
아이조는 입 안쪽뿐만 아니라 위까지 얼얼한 느낌이 들어 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엄청 매운 탄멘 때처럼 정신을 잃지 않은 게 다행인 건가.
오늘 탄탄면은 어떻게든 깨끗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혀가 이상해진 듯, 마지막으로 YUI가 주문해 준 행인두부의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입가심하지 못했다.
 
"YUI 씨, 저 다음엔 꼭 평범한 라멘을 먹었으면 해요."
 
"정말이지, 어쩔 수 없네~. 아이조는 겁쟁이니까. 알았어. 다음엔 일반 라멘집에 데려가줄게! 정말 맛있는 곳으로!"
 
YUI는 아이조를 향해 씨익 웃었다.
그리곤 뒷짐을 짓고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네 파트너는~?"
 
"아~...... 아마 잡지 촬영 일?"
 
"다음엔 데리고 와. 반드시!"
 
"말해둘게요. 저랑 한 약속도 잊지 마세요."
 
"그럼, 다음 오프 날 언제인지 보내줘~"
 
흔들흔들 손을 흔든 YUI는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앗, RIO? 나야~. 오늘 저녁은 뭐야? ......비프 스트로가노프!? 럭키~. 그럼, 지금 갈 테니까 남겨놔. 방금 아이조랑 라멘 먹었지만, 완전 여유롭게 들어가니까~"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는 상대는 보컬 파트너인 RIO일 터다.
FT4 멤버들은 항상 사이가 좋다.
그와 비교하면, 한숨만 새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촬영은 이미 끝났겠네......)
 
손목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다 됐다.
지금쯤이면 집에 가 있겠지.
매운 라멘으로 따뜻했던 몸도 차가워져 아이조는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큰길로 나와 역으로 향하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무언가 달려와 부딪쳤다.
 
"우왓!"
 
놀라서 뒤돌아보니 낯익은 개가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안 돼, 호타루!!"
 
리드 줄을 양손으로 잡아당기고 있는 이 또한 낯익었다.
변장용 모자도 안경도 항상 파트너가 사용하는 것이기에 금방 알 수 있었다.
개한테 끌려와 갑자기 뛰어서 그런지 숨이 차보였다.
 
"뭐............ 뭐 하는 거야? 너."
 
"보면 몰라? 산책!"
 
LIP×LIP의 파트너인 유지로는 기르는 개를 떼어놓으려 하면서 어쩐지 화가 난 듯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산책시키고 있었지......)
 
아이조는 역에서 벗어나 둑이 있는 조용한 산책로로 이동하여 계단에 앉았다.
도중에 자판기에서 산 캔커피를 손안에 굴리고 있는데 옆에 유지로가 개를 데리고 섰다.
강물에 비친 달이 바람에 불 때마다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 촬영, 어땠어?"
 
"......그냥...... 평범하게 끝났어."
 
"그렇구나......"
 
그밖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심심풀이로 캔을 흔들었다.
 
"......너는? 녹음이었지."
 
"아~...... 나는 정말 좋았어."
 
"흐~음."
 
"반응이 그게 끝이냐."
 
쓴웃음을 짓자 강을 바라보던 유지로가 시선을 이쪽으로 돌렸다.
 
"또 물어볼 거 있어?"
 
"아니...... 딱히 없지만...... 너, 항상 이 시간에 산책하는 거야?"
 
"오늘은......"
 
말을 하다 그만둔 유지로의 얼굴을, 아이조는 앉은 채 올려다봤다.
 
"뭐......?"
 
"아버지랑 코이치로가 또 말다툼을 해서...... 귀찮아져서 나왔어."
 
"친하지 않았나? 너희 아버지랑 동생."
 
"......반항기인 거 아닐까?"
 
유지로의 머리와 옷이 바람에 약간 휘날리고 있었다.
아이조는 입가에 손을 가져가 큭큭댔다.
웃을 일은 아니지만 담담한 유지로의 말투가 웃겼던 것이다.
 
"그 한마디로 끝내는 거냐."
 
"대화를 많이 하는 건 아니어서...... 하지만,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아마 슬럼프 같다고 생각하지만, 연습도 자주 쉬니까 아버지랑 자주 부딪혀."
 
유지로의 동생인 코이치로는 아직 중학생이다.
가부키 배우인 아버지의 후계자로 뽑혀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섰던 것 같다.
무대에 서고 싶어도 서지 못하고 뒷배 역할만 하던 유지로와는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늘 주목받는 동생도 나름 힘들고 고생할 터다.
 
"뭐어, 잘은 모르겠지만...... 너네 집 힘들겠네."
 
굴레도 많을 것이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사무실과 계약할 때, 유지로는 보호자 설득에 무척 애를 먹었다.
방임주의였던 우리 집과는 다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공연도 가까워지는데......"
 
"자유롭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조금 생각하고 나서 아이조가 대답하자 유지로가 의외라는 눈을 했다.
 
"왜?"
 
"그야...... 역시 네가 자유롭게 활동하는 걸 보고 부러워한다든가?"
 
아이조는 "나한테 묻지 마."라고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유지로의 집안에 대해 난 모르는 게 많다.
다만, 조금은 알 것 같은 건 내가 집안에서 동생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렸을 땐 형을 졸졸 따라다니며 따라 했었는 걸......)
 
스케이트보드도 그렇다.
형이 하는 일은 뭐든지 좋아 보여서 나도 하고 싶었다.
형제란 그런 걸까.
형은 동생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목표이며 동경의 대상이다.
 
"네가 형이니까 모르는 거야."
 
그렇게 말하자 유지로는 "하?"하고 의아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형은 형이고 동생은 동생이다.
의외로 파트너가 집에서 제대로 형 노릇을 하는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뭐어, 답답해진 것도 있겠지......)
 
중학생 때의 자신을 떠올려봐도 망설이기만 하고, 초조해져서 모든 게 싫었었다.
귀에 들어오는 모든 소리가 잡음처럼 느껴져 그곳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 쳤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모리타 아저씨가 말했었나......)
 
모리타 씨는 단골 악기점의 주인으로,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고 있을 때 만나 악기점에서 사용하지 않는 연습실을 제공해 준 은인이다.
집에 가기 싫을 땐 항상 그 연습실에서 기타를 치며 지냈다.
그곳만이 그때의 내가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장소였다.
뭘 해도 짜증이 나서 불평불만을 터뜨렸을 때가 있었다.
그때 모리타 씨는 "그럴 나이지."라고, 아이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으셨다.
폭풍 같은 감정에 휩쓸리던 당사자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라 그런 단순한 말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폭풍이 어느새 지나가자, 대체 왜 그리 난폭하게 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유지로는...... 집안사람에게 별로 반항한 적 없는 것 같고......)
 
아이돌이 되겠다는 결단을 말한 게 파트너에게 있어 인생 최대의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무대에 서지 못했기 때문이란 게 정말 파트너다웠다.
그러나, 가족 입장에선 놀랐을 터다.
동생에게도 그건 갑작스레 닥친 충격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파트너는 생각하고 있는 것도, 행동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이에 비하면 동생이 정면으로 아버지와 부딪치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인 반항을 하고 있는 걸 터다.

"그런데 말이야...... 유지로."

"......왜?"

"아까부터 너희 개가 내 머리에 계속 달라붙는데......"

어떻게든 해달라고 약간 앞으로 구부린 모습으로 호소했다.
유지로의 개가 등에 기대어 묶은 짧은 머리를 자꾸 씹거나 핥고 있었다.

"호타루, 그런 건 먹어도 맛없어."

유지로는 개를 내려다보며 말했지만, 떼어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아이조는 한 손으로 턱을 괴며 하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잘 따르는 건가......?)

유지로의 개는 매달린 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짖지 않아 좋지만, 머리를 핥는 건 가능하면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래 봬도 아이돌이고, 어디서 누가 보고 있을지 모른다.
모처럼 시간 들여 다듬은 머리가 엉망이 됐다.
기쁜 듯 꼬리를 흔들고 있는 호타루를 보며 유지로는 큭큭 웃었다.

"동료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꼬리 달려 있고."

"내 머리는 꼬리가 아냐."

아이조는 "정말이지......"라고 말하며, 머리를 풀고 일어섰다.
유지로가 아이조의 다리에 달라붙은 호타루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내일 사무실에서 미팅 있다고 매니저한테서 연락 왔어. 나중에 폰 확인해."

"흐~음...... 왜지? 오프였는데."

"몰라.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보지."

요즘 일이 계속 있었기에 내일은 얼마 없는 쉬는 날이었다.
갑자기 호출한다는 건 상당히 중요한 용건일 것이다.

(무슨 일일까......)

전화로 물어볼까 했지만 내일 사무실에 가면 알 수 있을 일이었다.


다음날 오후, 아이조와 유지로가 사무실에 가자 사장님과 매니저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쉬는 날이라 없는 것 같았다.
유난히 조용한 건 그 때문일 터다.
의자에 앉자, "실은 말야!"라고 사장님이 기쁜 듯 짝 소리를 내며 두 손을 모았다.

대강 이야기를 들은 아이조와 유지로는 놀라 ""무대!?""라고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급한 일이지만...... 이번 무대는 두 사람에게도 큰 도전이 될 거고. 성공하면 새로운 일로 이어질 거야."

사장님은 테이블에 두 손을 짚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저기...... 저, 연기 같은 걸 해본 적 없는데......?"

데뷔 전 연기지도를 받은 적 있고 뮤직비디오 촬영에서도 왕자님 역할을 맡은 적은 있지만, 연극 무대에 선 경험은 없었다.
그런 일이 들어오는 건 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일이 들어온다고......?)

속으로 초조해하며 옆에 앉아 있는 파트너의 얼굴을 살폈다.
유지로는 집에서 연기 연습도 하고 공부도 했을 것이다.
이전에 연기지도를 받을 때도 대사를 금방 외웠고, 그 연기력에 선생님도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하라고 하면 금방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놀라긴 했지만 곤란해 보이지는 않았다.

"응, 그렇지. 둘에게 무대 경험이 없다고 전했고 승낙도 받았어. 첫 무대라 힘들겠지만, 너희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이번 무대는 뮤지컬이야. 노래와 춤이라면 너희가 가장 잘하는 거잖아!"

"뮤지컬!? 이번 무대, 뮤지컬이에요!?"

아이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무대 경험도 없는데 갑자기 뮤지컬에 도전하라니 무모하다.

(하지만...... 확실히 노래와 춤이라면 항상 하고 있고...... 괜찮으려나??)

그런 말을 들으니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아이조는 "아니지 아니야!"라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무리겠지! 라이브랑 다르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연기도 하잖아? 그건 역시 엄청 어렵지 않을까!?)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자신이 갑자기 무대에 선다면 웃음거리만 될 거다.

(유지로는...... 어떻게든 해내겠지만......)

파트너는 지금도 잠자코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아이조는 '으윽, 큰일이다......'라고 생각하며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나만 못한다든가, 그런 건 진짜 재미없다고......)

"아이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연기도, 노래와 춤도 제대로 지도받을 수 있어. 확실히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아. 그래도 이번 무대는 반드시 너희가 해줬으면 좋겠어. 왜냐면, 둘에게 딱 맞는 배역이거든. 하지만 결정은 너희 몫이야."

사장님은 아이조와 유지로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우치다 매니저가 "대본과 악보는 여기 있습니다."라며 두 사람 앞에 대본과 파일로 정리된 악보를 놓았다.

"한 번 보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가능하면 바로 일에 들어가고 싶어. 둘이서 제대로 대화해 봐~. 둘이 출연하는 무대니까!"

두 사람의 뒤로 돌아간 사장님은 아이조와 유지로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당연히 둘이 받아들일 거라고 믿고 있는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이 사무실을 떠나 자리 잡은 곳은 큰길에서 떨어진 오래된 찻집이었다.
오늘은 휴일이기에 사무실 근처 패스트푸드점은 혼잡할 것이다.
별로 눈에 띄고 싶지 않았고, 대본을 찬찬히 살피려면 사람이 적은 가게가 좋았다.
창문 너머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카운터가 있었고, 4인용 테이블과 2인용 테이블 몇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손님은 없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서 오세요."라는 외침이 들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놀라 카운터를 바라보니,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는 이는 같은 사쿠라가오카 고등학교의 선배인 야마모토 코다이였다.
신문부로 활동해서 인터뷰하기도 했었다.

"야마모토 선배!?"

"어라, 너희 오늘 일하는 거야? 아님 오프?"

코다이도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저희 퇴근길인데...... 야마모토 선배,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세요?"

유지로가 가게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응. 부탁받아서. 빈자리 아무 데나 앉아."

코다이는 곧바로 트레이에 물과 물수건을 준비했다.
아무 데나 앉아도 된다라.
아이조와 유지로는 맨 구석 4인용 테이블에 가방을 놓고 앉았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학교 선배를 만날 줄은 몰랐다.

(뭐, 긴장을 놓을 수 있어서 좋지......)

팬과 우연히 마주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손님도 없으니까,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다.
가게 분위기도 아늑한 것 같고, 코다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면 종종 들려도 괜찮겠다고 남몰래 생각했다.
코다이가 테이블에 잔과 물수건을 놓자, 유지로는 이미 메뉴판을 보고 결정한 듯 "초콜릿 파르페랑 코코아 주세요. 크림 듬뿍 올려서."라고 주문했다.

"크림 듬뿍 말이지?"

아이조는 메뉴판을 펼쳐봤다.
당연히 크림 듬뿍 메뉴는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코다이가 볼펜을 든 손을 입가에 대고 "후훗"하고 웃었다.

"후배가 모처럼 와줬으니까. 그 정도 서비스는 해주지. 시바사키 군은?"

"앗, 저는...... 핫커피면 됩니다. 우유랑 설탕은 빼고요."

주문하자 코다이는 메모지에 적고는 "잠시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하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사장님 같은 사람은 안 보이는 걸 봐선 가게를 완전히 맡고 있는 것 같다.
능숙하게 잔을 준비해 초콜릿 파르페를 만들고 있었다.

(언제부터 아르바이트했을까......)

아이조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깨닫고, 대본과 악보를 가방에서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맞은편에 앉은 유지로도 다리를 꼰 채 대본을 넘기고 있었다.
처음엔 줄거리와 등장인물이 쓰여있었다.
요약하면 어느 거리를 찾은 두 청년이 드래곤을 무찌르고 그 나라의 공주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둘이 연기할 인물상도 뚜렷했고, 서로의 대화 템포도 좋았다.
사장님이 우리에게 딱 맞는 역할이라 한 이유도 읽어보니 알 것 같다.
싸우면서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우리와 겹쳐 보여 감정이입하기도 쉬웠다.

(이거...... 재밌네......)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게 하는 대본이다.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라며 코다이가 트레이를 손에 얹은 채 다가왔다.
아이조 앞에는 커피잔을 놓고, 유지로 앞에는 크림이 듬뿍 올라간 코코아와 초콜릿 파르페 잔을 나란히 놓았다.
유지로는 펜을 든 손으로 턱을 괸 채 가만히 대본을 읽고 있었다.
집중하고 있는 건지, 주문한 파르페가 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
코다이는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맛있게 드세요."라고만 말하고는 카운터로 돌아갔다.
둘이 읽고 있는 게 대본이란 걸 알아챘겠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조는 손을 뻗어 잔을 쥐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맛있다...... 이래선 역시, 또 들려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가끔 밖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코다이가 설거지하는 소리, 그리고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만 들려왔다.
테이블에 놓인 초콜릿 파르페 크림이 녹아 유리잔 표면에 천천히 흘렀다.

대본을 다 읽었을 때쯤, 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 커져 있었다.
이것도 사장님의 의도일 것이다.
아이조는 대본을 덮고 맞은편을 바라봤다.
유지로는 먼저 대본을 다 읽고 초콜릿 파르페의 아이스크림을 한입 가득 먹고 있었다.
그것도 꽤 녹은 것 같다.

"......어떻게 할래?"

"너는?"

"하고 싶어...... 하지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너는, 할 거지?"

유지로가 손을 멈추고 시선을 이쪽으로 돌렸다.
그 눈동자를 보니, 의욕이 가득한 걸 알 수 있다.
 
"못할 것 같진 않아서."
 
망설임 없는 말에, 아이조는 "그렇겠지."라고 중얼거렸다.
연기를 잘하는 유지로에겐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건 내게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그걸 알지만 한 번 해보겠다고 말해버리면,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된다.
일로 받는 이상, 책임이 따르는 건 당연하다.
못하는데 맡는다면 사장님뿐만 아니라 다른 관계자 모두에게 폐를 끼친다.
대본을 움켜쥔 채 가만히 있자, 유지로가 악보 파일에 손을 뻗었다.
 
"웬일로 겁이 많아졌어?"
 
턱을 괴며 놀리듯 웃었다.
그 말투에 화가 나 미간을 찌푸렸다.
 
"다름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잖아. 하고 싶으니까 한다고 간단히 말할 수 있겠냐고......"
 
"왜? 여태껏 하고 싶어서 온 거 아냐? 아이돌도...... 경험이 있진 않잖아."
 
노래 녹음도, 앨범 제작도, 사진 촬영도, 공중파 일도, 라디오도, 그리고 라이브도, 모든 게 처음이었다.
자신도 경험도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하나하나 쌓아가며 여기까지 어떻게든 해왔다.
실패가 없었던 건 아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같은 생각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고 언제나 해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아이조는 앞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올리며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자백할게. 이번만큼은 자신 없어! 연기지도 때의 일, 너도 기억하잖아...... 난 웃음거리였다고! 너무 서툴고, 발연기라는 걸 알기에, 평소처럼 자신만만하게 YES라고 말할 수 없어!"
 
시무룩해진 얼굴로 "이걸로 됐지."라며 고개를 돌렸다.
 
"딱히 연기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엇...... 어째서?"
 
"그야, 이거...... 평소의 아이조 모습 그대로잖아."
 
유지로는 대본을 손에 쥐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절대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디가?"
 
"눈치 없는 거? 그리고, 단순하고 생각이 없는 거?"
 
"너야말로 네 모습 그대로잖아. 입이 거칠다든가, 귀엽지 않다든가, 꽈배기처럼 꼬여서 솔직하지 못하다든가!"
 
"하아? 누가 꽈배기라고!? 다시 말해봐!"
 
"역시, 못해! 너랑 사이좋게 뮤지컬 같은 걸 할 수 있겠냐!"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자신 없으면 구석에 처박혀서 훌쩍이기나 하라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정신을 차렸을 땐 둘 다 일어서 있었다.
테이블에 상체를 내밀고는 서로 그르렁대기 시작했다.
무릎이 닿아 테이블이 흔들리고 식기가 달그락거렸다.
초콜릿 파르페 잔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자, 둘 다 거기까지—."
 
카운터에서 나온 코다이가 둘의 옷깃을 잡고 휙 떨어뜨렸다.
 
"싸울 거면 가게 밖에서 싸워."
 
싱긋 웃는 코다이의 모습에 아이조도 유지로도 움츠렸다.
그렇다. 여긴 카페다.
둘 다 잘못했단 얼굴로 ""죄송합니다.""라고 얌전히 사과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둘은 곧장 사장실로 향했다.
답을 빨리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기분 나쁘단 얼굴로 둘이 방에 들어서자 우치다 매니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희 또 싸웠니!?"
 
머리가 삐죽삐죽하고 셔츠도 구겨져 있으니 금방 알아차렸을 터다.
"정말이지, 언제쯤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려나......"라며 골칫거리라는 듯 이마를 짚었다.
아이조와 유지로는 서로 노려보곤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사장님은 "어쩔 수 없는 애들이네."라며 난처한 듯 웃고는, "어떻게 할지는 정했어?"라고 물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당연히!! 하겠습니다!!!!""
 
아이조는 파트너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유지로도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따라 하지 마!"
 
"너야말로, 안 한다고 했으면서 왜 말 바꿔? 정했으면 그거대로 해!"
 
"너만 멋있는 모습 보이게 냅두겠냐!"
 
서로 밀치며 싸우는데 달려온 사장님께 둘이 한꺼번에 껴안겼다.
둘의 입에서 ""으극!""하고 찌부러지는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게 말해줄 거라고 믿었어~!! 역시 둘 다 내 예상대로! 이제, 반드시, 성공시킬 거야~~!!"
 
"사장님, 제가 곧장 연락하고 올게요! 그리고 업무 스케줄도 조정해야 해요~~~!!"
 
우치다 매니저가 안경을 꾹꾹 눌러 올렸다.
사장님도 매니저도 의욕이 넘치는 것 같다.
아이조와 유지로는 사장님 품 안에서 서로 얼굴이 굳어졌다.
 
(우리, 언제까지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지.)
 
FT4 멤버들은 언제 만나도 화기애애하고 즐거워 보인다.
데뷔 전 신세를 진 적 있는 댄스 보컬 유닛의 무네다 미후유와 이부키 카즈마도 궁합이 잘 맞는 듯 파트너와 호흡 맞추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이렇게 싸움만 하는 유닛은 우리뿐일 터다.
데뷔한 지 1년이 지났으니 나름 성장도 했을 것이다.
이 영양가 없는 말다툼도 슬슬 그만할만한데.
 
"...잠깐, 붙지 말아 줄래? 불쾌하거든!"
 
"사장님한테 말해......! 그보다 아프잖아. 발 밟지 마!"
 
잘 되지 않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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