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LOVE&KISS

[소설] LOVE&KISS (인트로)

mingle 2023. 5. 13. 12:59

Introduction ~인트로~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북쪽 나라엔, 드래곤이 지키는 보석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어떤 소원이든 단 하나만 이루어준다.
지금은 이야기를 이을 사람도 없다.
먼 옛날 잊혀진 이야기.
 
아득히 먼 그 나라에.
마중 나온 아름다운 소녀에게 무릎을 꿇고 맹세와 입맞춤을.
그대의 손에 행운과 축복을 내립니다.
이건, '희망'의 세계로 이어지는 이야기—.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원형 테이블에 놓인 촛불을 흔들었다.
가게 안엔 몇 명의 손님이 있었고, 작은 목소리로 잡담을 나누며 컵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느 거리에서나 이런 변두리 술집에서는 술 취한 손님들이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이 가게의 손님들은 음울한 표정으로, 웃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경계심이 어린 시선이 카운터에 있는 나그네를 향하기만 했다.
이 거리를 방문하고 나서 '어딘가 이상하다'는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긴 했지만, 그 감각이 점점 강해졌다.
여행자들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폐쇄적인 시골 마을이라면 몰라도 이곳은 소국의 왕도다.
성문을 빠져나가면 첨탑이 있는 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교역이 활발한 나라에서 많은 여행자나 상인들이 이 거리를 찾는다고 들었는데, 큰길에 늘어선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낡은 간판만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의 모습도 희미했다.
낮에 들른 시장도 시든 채소만 조금 팔릴 뿐이었다.
아이들 목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소문으로는 더 번화한 거리라고 들었는데, 꽤 조용하네요."
 
컵을 기울이며 가게 주인 남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다.
통에서 술을 따르던 남자는 미심쩍은 눈을 하면서도 "그런 게 아니야."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물이 나타나서 큰길을 지나갈 수 없어. 때문에 이 모양이야."
 
"헤에......"
 
(마물, 인가......)
 
그런 이야기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여행을 하다 보면 마물과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마물보단 산이나 들에서 만나는 짐승이나 나그네를 습격하여 금품을 강탈하는 산적이 훨씬 많을 텐데.
어차피 여행에 호신용 무기는 빼놓을 수 없다.
성벽 안이라면 몰라도 그 문을 한 발자국만 나가면 언제 무엇이 덮쳐도 이상하지 않은 위험지대라는 것.
 
"전왕 때는 좋았는데, 공주님이 왕위를 계승하고 나서는..."
 
주인 남자가 갑자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뭐, 너도 빠른 시일 내에 이런 거리를 벗어나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남자는 더이상 묻지 말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더는 물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은화 한 닢을 카운터에 뒀다.
물처럼 연한 포도주가 반쯤 남아있는 컵을 뒤로한 채 의자에 올려뒀던 짐을 들었다.
천에 싸인 건 활이었다.
그걸 어깨에 걸치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카운터를 떠났다.
손님들은 순간 말이 없어지며 가게를 나갈 때까지 계속 내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문을 닫자 습한 바람이 몰아쳤다.
비가 뿌옇게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온통 어두웠고 거리엔 사람의 모습이 없었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군......"
 
챙이 넓은 모자를 단단히 쓰고, 젖기 시작한 돌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거리의 사람들은 입이 무겁고 너무 많은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래서는 며칠을 머물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정보를 모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지...... 그건 그렇고,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네.)
 
고즈넉한 어두운 거리를 둘러보았지만, 집집마다 불빛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죽은 거리 같은 섬뜩함이었다.
아직 해가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잠들기엔 너무 이를 터인데.
끼익 거리며 열리는 문소리를 눈치채고 돌아보니 어린아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내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힘차게 닫힌 문 너머에선 "밖에 나가면 안 된다고 했잖니!"라며 꾸짖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없는 건 아닌데.)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걷기 시작했다.
탁한 구름의 일부가 뿌옇게 붉은 건 달이 가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로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뒤에서 늘어나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힐끗 수면으로 시선을 돌리며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
좁은 거리에 들어서도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사라지지 않았다.
벽에 기대어 취한 노인이 술병을 안고 자고 있었다.
유지로는 방향을 바꾸며 한 번 뒤를 돌아보고는 달려 나갔다.
등 뒤에서 들리는 상대의 발소리도 초조한 듯 빨라졌다.
어느새 빗줄기가 거세졌고, 케이스도 모자도 완전히 젖었다.
길의 끝은 담장으로 되어 있어 막다른 골목이었다.
유지로는 뒤를 돌아보며 허리에 숨기고 있던 단검을 뽑았다.
그 칼끝이 하늘을 갈랐다.
뒤에서 따라온 상대의 급소를 찔렀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가 반사적으로 뒤로 젖혀 피한 게 조금 더 빨랐던 것 같다.
순간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고, 유지로는 땅을 박차고 돌려차기를 하려 했다.
 
"자, 잠깐!"
 
상대가 당황한 듯 소리치며 공격 의사가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몸집과 생김새를 보아 나이는 나와 크게 차이나 보이지 않았다.
그 역시 나그네인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케이프를 걸치고 있었다.
어깨너비가 넓고 팔과 다리도 탄탄한 것을 보아 꽤 단련한 몸인 것 같다.
리본으로 뒷머리를 묶고 있었다.
깊게 눌러쓴 모자 끝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공격하지 마. 비겁하게!?"
 
"남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오는 불량배에게 예의 차릴 의리는 없으니까."
 
단검을 들이댄 채 씨익 웃으며 되받아쳤다.
 
"나는 불량배가 아니야. 보면 알잖아!"
 
"충분히 불량해 보이는데."
 
"하아!? 어디가!?"
 
"얼굴이랑 분위기. 뭣보다 불량배가 아니면 뭐야? 산적? 도적? 강도?"
 
"그거 다 같은 거잖아!"
 
그는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었다.
감정이 얼굴에 잘 드러나는 놈이라며 웃음이 나올 것 같아 단검을 허리에 찬 칼집에 도로 넣었다.
불량배가 아니라는 건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따라왔는지 다소 흥미로웠다.
 
(이야기 정도는, 들어도 괜찮겠지...)
 
"그래서... 무슨 용건이야?"
 
그는 고개를 들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처럼... 이 거리에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석을 찾는 놈이 있다고 들어서."
 
톤을 낮춘 그 목소리가 골목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겹쳤다.
서로 마주한 채 몇 초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유지로는 천천히 모자챙을 내렸다.
그 입술에서 새어 나온 것은, "그렇군......"이라는 한 마디뿐이었다.
 
(이 녀석도 마찬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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