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
세상에 넘쳐흐르는 모든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ー.
(시끄러워…… 이 녀석들 모두……)
중학교 3학년 봄, 노을로 물든 하굣길을 시바사키 아이조는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었다.
들려오는 대화 소리나 시끄러운 소리가 거슬려 미간을 찌푸렸다.
(싫다……)
귀를 막아버리고 싶다.
시끄러운 소리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다.
올려다보니 잔뜩 구름 낀 하늘에, 마치 비가 내릴 것 같았다.
하늘은 낮았고, 압박하듯 높게 솟은 빌딩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떻게 모두 태연하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이렇게 세계가 좁고 답답한데ー.
고여 있는 어두운 물속으로 끝없이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좀 더 넓은 세계로 가고 싶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세계에.
그런데, 그런 세계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딜 가나 현실은 어떤 것도 달라지는 게 없는데ー.
“다녀왔어……”
집에 도착해,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득 시선을 두니, 드물게도 현관에 형과 엄마의 구두가 놓여 있었다.
(……돌아온 건가)
평소에는 아무도 없고, 불도 켜지지 않은 조용한 집인데.
신발을 벗고 올라가자 엄마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콤팩트를 보며 새빨간 립스틱으로 조심스레 입술을 덧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조는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 나가요?”
“어어, 내일 돌아오니까. 저녁, 적당히 먹어.”
엄마가 콤팩트를 탁 닫고 거실을 빠져나갔다.
“또, 남자랑 아침까지요? 한창이네요.”
빈정거리듯 말하는 이는 거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던 형, 켄이었다.
“자식이 부모 일에 참견하지 마.”
엄마는 기분 나쁘단 듯이 말한 뒤, 콤팩트와 립스틱을 가방에 넣고 현관으로 왔다.
“안 하는데요~? 이쪽도 자유롭게 하고 있으니까~”
형이 “다녀오세요~.”하고 싫은 듯 말하며 배웅했다.
엄마는 흥 하고 코를 킁킁거렸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갔다.
그 모습을 눈으로 좇던 아이조의 입에서 우울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늘 있던 일이다.
이것이 이 집의 일상ー.
뭔가를 말하는 것도 이젠 체념했다.
말해 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미카~. 지금 막 미카 생각하고 있었어. ……아니 정말 정말. 우린 역시 서로 사랑하는 사이잖아? 아하하, 아니, 정말이라고……아하하핫.”
거실로 들어서니 형이 누운 채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상대는 항상 데리고 다니는 여자 중 한 명일 것이다.
헤실헤실 웃으며 절절하고 달콤한 어조로 지껄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 고개를 휙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어디에 있어도, 듣기 싫은 목소리, 듣기 싫은 소리뿐ー.
문을 쾅 닫고 짜증 난 듯 가방을 던졌다.
그러자 선반에 부딪히며 밀어 넣었던 앨범과 책이 바닥에 떨어졌다.
제멋대로인 엄마.
그 엄마를 꼭 닮은 형ー.
겉옷을 벗고 침대로 올라가선 침대 헤드에 기대며 헤드폰을 꼈다.
(짜증 난다…… 구역질 난다……)
옛날 이 집에 울리던 아빠의 어쿠스틱 기타 소리나, 형과 자신의 활기찬 노랫소리, 엄마의 즐거운 웃음소리는 이젠 들리지 않는다.
『시끄러우니까, 부르지 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엄마의 고함을 지우고 싶어서 두 손으로 헤드폰을 꾹 눌렀다.
이 집에도 부드러운 소리가 넘치던 때가 있었다.
아이조가 노래하면, 아빠도 엄마도 기뻐해 주었다.
어째서 바뀌어 버린 걸까.
아빠가 기타를 치지 않고, 밝은 대화도 사라져, 부모님의 다툼 소리만, 매일 들리게 되었다.
그래도 노래하다 보면 신이 날 거고, 다시 분명ー.
아이조는 헤드폰을 낀 채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이동했다.
밖은 어두웠고, 비가 소리 없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흐린 유리창 너머로 인근 아파트와 집들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 모습을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에게 혼이 났을 땐 왜 그런 말을 들은 건지, 뭐가 잘못됐는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알아챈 건 이 집에선 다신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것뿐.
내뱉은 그 말이 가슴을 도려냈고, 슬퍼서 큰 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그런 나를 감싸준 형이 비난하는 눈으로 엄마를 저주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게 노래 부르는 것을 기뻐해 주었는데.
어느새 내 목소리는 엄마에겐 소음이 되고 말았다.
이제 이 집에서는 그 누구도 예전처럼 웃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과 팔짱을 끼고 걷는 엄마의 모습이나 여자의 어깨를 껴안고 걷는 형의 모습.
보기 싫다, 궁금하지 않다고 생각해도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면 싫어도 눈에 들어왔다.
(나도 알아. 지겨워서 맨날 짜증 내고, 물건을 부수며, 그저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뿐이야. 내가 생각해도 너무 촌스러워……)
선반 앞에 몸을 굽혀 앨범을 주우려고 했다.
열린 앨범에 붙어 있던 사진을 발견하곤, 뻗은 손이 멈췄다.
상장을 자랑스레 바라보며 웃고 있는 아이조와, 기쁜 얼굴로 나란히 선 부모님과 형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이조, 콩쿠르 우승!』
사진 밑엔 손글씨가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힘차게 쓴 듯한 엄마의 글씨였다.
많은 이들의 박수와 함성이 귓전에 맴돌았다.
조명이 비치는 무대 위에서 본, 박수치는 관객들과, 부모님과 형의 기쁜 얼굴도.
그때의 가슴 뭉클한 기분까지 생각났다.
그것들을 잊고 싶어서 눈을 감았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다.
후회해봤자 나를 둘러싼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앨범을 탁 덮고 책장 가장 안쪽에 밀어 넣었다.
(이런 일상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꿈도 희망도.)
잘하는 건 기타와 춤 정도일까.
그렇다 해도 그걸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진 모른다.
노래 부르는 건 이미 그만둔 지 오래였다.
운동부 친구나 선배로부터 권유받은 일이라면 많이 있다.
계속 거절하다, 결국 동아리에는 들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걸 찾을 수 없어서.
바뀌는 보람이 없는 지루한 매일의 반복.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고, 끝나면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집에 가기 싫어서 거리를 배회할 때도 많았다.
무엇 때문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고, 그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또 지루한 일상의 반복일까.
언제쯤 끝날까.
아니면, 계속 찾다 보면 언젠가 가슴 뭉클해지는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까.
진심으로 하고 싶은, 시간을 잊고 열중할 수 있는 그런 것을ー.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아이조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쳐다봤다.
이대로가 좋을 리는 없다.
그걸 알고 있는데.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건, 음악뿐이다.
음악을 듣고 있을 때만큼은 쓸데없는 걸 생각하지 않아서 좋다.
헤드폰을 끼고 음악 세계에 몰두하면 싫은 소리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
화면 스크롤을 내리며 음악을 찾다 보니 한 모집 광고가 눈에 띄었다.
(NEXT 아이돌 오디션……)
손가락으로 눌러 광고를 표시하자 「너의 ‘재능’을 피워라!」 라고 쓰여 있었다.
“재능……”
핸드폰 불빛에 비친 아이조의 눈동자가 헤매듯 흔들렸다.
“그런 게 나에게 있을까……”
노래 콩쿠르에 출전해 우승한 적은 있지만, 오래전의 일이다.
벌써 몇 년째 노래하지 않고 있다.
『나를 바꾸고 싶어, 도전하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기 당신!』
거실 쪽에서 텔레비전 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학생들 사이에도 인기 있는 고등학생 모델이 나오는 학교 홍보였다.
『기다리기만 하면 안 돼! 세나와 함께 Let's try♪』
(별로 아이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야……)
여자를 대하지 못하는데 될 수 있을 리 없다.
학교에서도 거의 대화한 적이 없다.
항상 먼저 피했기 때문에 말을 걸어오기 어려웠을 터다.
말을 걸 일도 거의 없다.
학급 볼일이 있는 것 말고는.
그런 내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아이돌처럼, 팬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다니,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 노래하고 싶다……!)
아이조는 일어나 핸드폰을 응시했다.
생각해보면 나에겐 노래밖에 없었다.
시끄럽단 말을 들어도, 노래 부르는 걸 한 번은 그만둬도, 마음 한구석에선 여전히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무얼 해도 열정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맛본 감동을.
내 노랫소리로 모두를 웃게 해주는 그 기쁨을.
모집란을 응시하던 아이조의 눈동자에 결의의 빛이 빛났다.
다시 한번 무대에 서서 그때처럼 힘이 된다면.
노래로 누군가를 미소 지을 수 있게 한다면.
(뭔가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이름을 적고 필요사항을 써내려 나갔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첨부하고 응모 버튼을 과감히 눌렀다.
다음날, 전철로 등교하면서 아이조는 창밖을 바라봤다.
“아이돌 모집이래!”
들려오는 목소리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의자에 앉아 있는 다른 학교 여자애들이 보였다.
“모나, 귀엽기도 하고. 응모해보지 그래?”
“엑, 무리야! 응모하는 사람도 많을 테고.”
“하지만, 모나 언니, 연예인이잖아.”
“언니는 특별한 거고! 나 같은 건 무리야! 보통은 서류심사도 통과 못 할걸.”
말을 들은 여자는 곤란한 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런가……)
응모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은 너무 많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기세로 응모했지만, 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아이돌을 목표로 레슨 받아 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난 누군가에게 배운 적도 없고……)
춤은 조금 자신이 있다고 해도 독학이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혹, 터무니없는 짓을…… 했을지도?)
오디션에 나가봤자 망신만 당할지 몰라.
다른 사람들의 수준을 전혀 모르겠어.
게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응모했는지도.
(특별……인가. 그렇지. 특별한 게 없으면 붙을 수 없겠지. 나에겐…… 있나? 그런 게.)
아이조는 전차의 창문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바보 같은 짓 저질렀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 나와 운동장 앞을 지나며 정문으로 향했다.
야구부와 축구부 부원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 곧 1차 심사 결과가 나올 때다.
매일 메일을 확인하고 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갑자기 벨소리가 울려 아이조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서둘러 교복 상의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아이돌 오디션의……)
1차 심사 결과 메일이었다.
숨죽이고, 긴장한 채 해당 메일을 열었다.
글 중앙에 쓰인 『합격』이란 글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오옷…… 우와아------악!!!”
무심코 주먹을 치켜들고 뛰어오르자, “뭐야?”라는 듯 야구부와 축구부 부원들이 돌아봤다.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합격 되는 건 선택된 특별한 인간뿐.
거기에 내가 있을 확률은 분명 미미할 거라고.
(문이 열렸다…………앗!)
기쁜 나머지 웃음이 나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갈 수밖에 없잖아!!”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며,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건 얼마 만일까.
다시 한번 노래하고 싶다.
빛이 넘치는 그 무대 위에서ー.
[2]
가부키의 세계는 화려하다.
형형색색의 의상을 입고 빛에 비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 무대에 내가 설 곳은 없다. 동생…… 그가 있으니까……)
아무도 없는 분장실에서 소메야 유지로는 혼자 부채를 피고 천천히 춤을 췄다.
무릎을 꿇고 꽃이 바람에 흩날리듯 부채를 펼쳤다.
오늘 무대에는 동생도 출연하고 있다.
우아하게 춤추는 그 모습을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볼 것이다.
분장실에서 화장을 하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온나카타라고 불리는, 여자 역을 연기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얼굴에 하얀 분을 칠하고 입술에 정성껏 연지를 바르고 있었다.
피 같이 새빨간 그 색깔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유지로가 속한 ‘소메야’ 가문은 대대로 가부키를 계승해왔다.
아버지는 이름이 알려진 가부키 배우로, 철이 들 무렵 즈음부터 쭉 무대에 서 온 사람이다.
그리고 동생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나도 아버지나 동생과 같이 가부키 세계에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바란다면, 노력을 거듭하면, 같은 무대에 설 수 있을 거라고.
몰랐던 건, 그곳이 선택된 사람만이 설 수 있는, 특별한 세계였다는 사실.
춤을 끝내자 유지로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대사를 외워도, 춤을 잘 춰도, 무대에는 설 수 없었다.
누군가 봐주는 것도 아니었다.
박수갈채를 받는 건 언제나ー.
긴 앞머리가 고개 숙인 얼굴을 가렸다.
포렴을 젓히고 분장실로 들어온 동생 코이치로에게 들키자,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다.
어느새 무대가 끝났던 것 같다.
동생은 기분 나쁜 듯한 표정으로 유지로 앞을 지나치더니 의상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다.
유지로는 다다미에 정좌하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코이치로 씨……”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고 있는 동생의 말에, “어?”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넌 무대에 설 수 없잖아.”
냉담하게 내뱉은 동생과 거울 너머로 눈이 마주쳤다.
거기엔 경멸의 빛이 떠 있었다.
유지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앙다물었다.
방금 전의 춤을 보고 있었을 터다.
그건 동생이 오늘 무대에서 췄던 것과 같은 춤이었다.
이 집의 상속자는 동생, 코이치로로, 주위로부터 기대를 받고 있다.
화려한 세계에 몸담고 있는 동생과 그것을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신은 다르다.
같은 『소메야』 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ー.
유지로는 표정을 지운 채, 잠자코 코이치로가 벗은 기모노를 갰다.
그 손이 멈춘 건, “코이치로.”라고 동생을 부르며 아버지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일본 옷을 입은 아버지는 앉아 있는 유지로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가장 먼저 동생을 보고 있었다.
“고히키 씨가 오셨다. 인사드려라.”
“네, 아버지.”
조금 전과 달리 밝게 대답한 동생이 벌떡 일어나 분장실을 나섰다.
아버지가 커튼을 손에 든 채 문득 생각난 듯 돌아보았다.
“유지로.”
“앗…… 네.”
유지로는 긴장한 듯 자세를 바로 하고 대답했다.
“정리가 끝나면 돌아가라.”
그뿐이었다. 말을 마쳤을 땐 아버지는 더 이상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네, ……아버지.”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하고 머리를 숙였다.
동생이 오늘 무대에 올라 즐거운 듯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복도 너머로 멀어졌다.
『대를 이을 수 없다. 넌 매력이 없어.』
아버지의 그 말씀과 함께 닫혀버린 세계ー.
(매력이라니 뭐야…… 뭐가 아니라는 거야?)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증명해 보일 텐데.
그러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거다.
아무리 힘든 연습이라도 견뎌내고야 말겠다.
하지만, 그 자격은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다ー.
『아무리 연습해도 넌 무대에 설 수 없잖아.』
동생의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있어 무릎 위에 놓인 손을 아플 정도로 꽉 쥐었다.
앞으로도 계속, 누구에게도 기대받는 것도 없이, 바라는 것도 없이 동생의 그림자처럼 살아간다.
그게 나에게 주어진, 규칙 같은 거였다.
아무리 동경해도 빛이 비추는 건 내가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인가.
세상은 왜 이렇게 불합리하고 불공평할까.
왜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나뉘는 걸까.
“유지로.”
분장실로 들어온 어머니, 다에가 “수고했어.”라며 걱정하듯 웃었다.
“어머니……”
“도와줄게.”
옆에 앉은 어머니와 잠시 말을 멈추고 의상 장식과 소품을 정리했다.
“……유지로, 마음이 가는 걸 해.”
갑작스런 말에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소메야 가문의 당주와 재혼한 건 나야…… 너는 이 집에 묶일 필요는 없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어머니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재혼하고 난 후 어머니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불평불만도 하지 않고, 매일 참기만 했다.
동생한테 심하게 맞았을 때도 그랬다.
“괜찮아요. 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유지로는 고개를 돌려 약한 미소를 짓고 그렇게 대답했다.
더 이상의 부담이나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쓰레기, 버리고 올게요.”
어머니의 말을 가로막듯 일어서곤 봉지를 들고 분장실을 나왔다.
공연도 끝나고 극장도 닫히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희미한 조명만 켜져 있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곤 생각해. 하지만, 여길 나와서 어디로 가야 좋을지……)
어머니도 나도, 이 집 외엔 갈 곳이 없다.
유지로는 걸음을 멈추고 벽에 걸린 커다란 초상화를 올려다봤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화장을 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유지로를 힐끗 보았을 때와 같은 차가운 눈동자가 액자 안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계속 무대에 서는 게 소망이었다.
그러기 위해 다른 모든 걸 버리고 왔다.
『대를 이을 수 없다. 넌 매력이 없어.』
아버지의 말씀이 머리를 스쳤다.
고개를 숙이고 들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도.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 나에겐 아무것도 없어.”
유지로는 자신의 빈 손바닥을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어디라면 받아줄까.
어디라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곳이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까.
있다면 가르쳐주길ー.
어떻게 하면 거기에 갈 수 있을까.
분장실로 돌아오자 방은 정리되어 있었고,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끝나면, 더는 여기에 있을 필요는 없다.
어머니는 구속받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집에 있는 한, 계속 구속받을 것이다.
관계를 끊을 재주와 힘이 지금 내겐 없다.
(그래도, 만약…… 이 집을 나오면……)
좀 더 자유롭고 넓은 세계로 갈 수 있다면ー.
그저 소망일 뿐이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릎을 꿇고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잡지를 치웠다.
동생의 사진이 표지로 되어 있는 잡지였다.
젊은 가부키 배우로서 이미 주목을 받고 있기에 잡지 취재 같은 것도 들어오고 있다.
뒤집자, 게재되어 있던 ‘NEXT 아이돌 오디션’이란 모집 광고가 눈에 띄었다.
『그랑프리 데뷔 결정!』
큼지막하게 쓰인 그 글자를 유지로는 잠시 바라봤다.
“데뷔……”
(데뷔하면,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망설임처럼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쓴웃음이 번졌다.
(무리일 거다…… 아버지에게도 버림받았으니……)
동생의 말대로 쓸데없는 일이다.
어쩌면, 언젠가 무대에 설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있지도 않은 희망을 품으며 연습을 계속해 온 일도.
하물며, 아이돌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렇게 붙임성이 있는 편이 아니다.
학교에선 될 수 있는 한 사람들과 엮이지 않으려 했고, 긴 앞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며 걸어 다니는 일도 잦았다.
‘칙칙한 녀석’이라고 험담을 듣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해 온 건 가부키의 노래 연습뿐이다.
아이돌이 되는 데 필요한 레슨을 받은 게 아니다.
그 세상의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무대 위에 올라간다면.
무대에 서면 누군가 봐줄까.
거기라면 “네가 필요해”라고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변하고 싶다ー.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진심으로 웃을 수 있을까.
전력을 다해 무언가에 몰두한다면, 가슴 펴고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아이돌이 된다…… 그런 건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어…… 하지만.)
유지로는 그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오디션 사이트를 열고는 응모란을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길게 자란 앞머리를 한 손으로 들춰봤다.
(뭔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기다린다고 달라지진 않을 거다.
체념해선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무의미한 날들이 계속될 뿐이다.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핸드폰을 세게 움켜쥐었다가 응모란에 이름을 써넣었다.
마지막에 사진을 붙이고 과감히 응모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생각해서, 응모해버렸지만ー.
점심시간, 유지로는 아무도 없는 학교 계단에 홀로 앉아 무릎 위에 도시락을 꺼내며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이곳은 유독 다른 학생들이 오지 않아서, 어떤 목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곧 1차 심사 결과가 나오지만, 아직까진 메일이 오지 않았다.
똑같이 무대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아이돌 세계도 그럴 것이다.
몇천, 몇만, 몇십만 중에서 뽑힌다.
그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불릴만하다.
(기적을 일으키는 강한 운은 아마 내겐 없을 거야.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선택된 적이 없으니까……)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는 유지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명 신은 보지 않고 있을 터다.
신의 사랑을 받는 것은 매력이 있는 특별한 사람뿐이다.
알고 있는데.
십중팔구 포기하면서도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나도 있고ー.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현관 앞에 멈춰 섰다.
(메일…… 오늘도 없었어……)
매일, 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집안일을 하는 동안에도, 마음이 초조해져 몇 번이나 메일을 확인했다.
역시 불합격인 걸까.
불합격이라도, 결과를 알리는 메일이 오겠지만, 그것도 아직 오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는데 새 메일을 알리는 소리가 바지 주머니에서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니 메일의 제목만 표시되어 있었다.
오디션 결과 통보다.
유지로는 숨죽이고 핸드폰을 움켜쥔 채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방으로 뛰어 들어가 다다미 위에 앉고는 긴장한 손가락으로 메일을 열어봤다.
손이 떨렸다.
초조하게 글을 훑어보자 거기에 쓰여있던 것은ー 『합격』이란 글자였다.
핸드폰을 두 손으로 쥔 채 눈을 크게 떴다.
(거짓말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처음 알았어. 선택된다는 건 이렇게…… 이렇게 기쁜 거구나!)
튕겨 나가던 특별한 세계에 이번에야말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택된 곳에 뭐가 있을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보고 싶어……)
화장실로 가서, 거울 속 자신과 마주했다.
긴 앞머리로 표정을 감추듯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버지나 동생처럼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는 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 자신도, 빛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ー 가보고 싶다.
“가기 위해서, 나는……!”
이마에 닿는 앞머리에 가위를 댔다.
비스듬히 싹둑 잘라버리곤, 얼굴을 들어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안 돼.
다른 누군가의 꿈이 아니다.
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변한다……』
오디션 2차 심사 당일.
회장 홀의 로비에 5명의 남자가 모였다.
Full Throttle4.
FT4라고 불리는 댄스 보컬 유닛의 멤버들이었다.
“오랜만이야, IV 군. 오늘은 모두 와줘서 기쁘네. 잘 있었어?”
그렇게 말을 건 이는 오디션의 주최 기획사 「뫼비우스」의 타무라 사장이다.
그 뒤에 있는 이는 우치다 마유라는 여성 매니저다.
“오랜만입니다. 타무라 씨.”
IV가 타무라 사장을 향해 싱긋 웃었다.
“Full Throttle4의 전국투어 추가 공연이 정해졌다고 하지 않았나. 최상의 컨디션이네.”
“저흰 언제나 전속력으로. 항상 최상의 컨디션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건 보컬 담당 YUI다.
“우리가 일등 하는 건 어쩔 수 없지. 왜냐면, 라이벌이 될 만한 놈이 없거든. 슬프네~”
댄스 담당의 MEGU가 흥에 겨운 듯 말하며 후훗 웃었다.
“우리의 실력을 보면 당연해.”
카운터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DAI가 모자를 누르며 말했다.
그도 MEGU와 같은 댄스 담당 멤버다.
“야, 타무라 씨한테 실례라고.”
또 다른 보컬 담당, RIO가 다그쳤다.
“지금 우리가 있는 건 타무라 씨가 프로듀스해준 덕분이에요.”
IV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들이 오늘 여기에 와 있는 건 타무라 사장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의 능력과 노력 덕분이지. 오늘 오디션 심사 잘 부탁해.”
“타무라 씨의 안목이 없는데 그런 인재를 찾을 수 있으려나.”
그렇게 묻자, “흐-음 어떨까.”라며 타무라 사장은 볼에 손가락을 댔다.
“설레는 만남이 있길 바랄게.”
비밀번호는 제4장 8번째 문장 「「」」 안에 있는 7글자 (일본어, 느낌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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